같이 가면 길이 된다? 같이 가면 길이 만들어진다.

미야비 맘 2023. 8. 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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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때로 일부러 자신을 속이는 덧없는 희망으로 빈자리를 메우려 했다고 한다. 현재의 나 역시 그런 듯하다. 아니 솔직히 희망을 꿈꿀 당시의 루쉰은 젊기라도 했고 나이를 먹어서는 글로써 무쇠방을 무너뜨릴 희망의 언저리를 맴돌기라도 했다지만

 

젊지도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그다지 없는 내가 하는 희망은 정말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1. 일터의 죽음

 

최근 희망의 거품이 터지는 총성소리 같은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죽을 각오를 하거나 권하는 사람 중 죽는 사람은 드물고 그런 각오의 압력 속에 선택의 여지없이 묵묵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뉴스들이다.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소리소문 없이 죽어가는 노동자들은 훨씬 많다. 일터에서 죽는 사람들의 40% 이상은 60세 이상, 50대도 3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런 노동자들의 죽음은 다음 죽음으로 덮이고 그 무지막지한 숫자에 무뎌져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마치 부마항쟁 이후 차지철이 박정희에게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만∼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시대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떠들지만 그 이면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게는 열악하다. 개인적으로 AR, VR 이외에도 메타버스 등 최신 디지털 플랫폼에 대해서 직접 배우고 경험해 봤는데 결국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손목갈기(배경 만들기, 캐릭터 만들기, 웹페이지 만들기 등은 모두 개인의 수작업)가 90% 이상이었다. 그러면서 클라이언트의 주문 시간에 맞추기 위해 노동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업계의 관행으로 여겨 견디지 못하고 업계를 떠나면 실패한 게으름으로 치부한다.

 

저자의 "실패한 게으름에는 가혹하지만 성공한 게으름에는 얼마나 관대한가. 운이나 권세에 자신의 재능과 노력 이상으로 벌고도 몇백 억 세금을 빼돌린 사람은 모른 척하다가도 없는 사람의 몇만 원에는 서릿발 치는 눈빛을 보낸다."가 떠오르는 일례이다.

 

일터의 죽음이 실패한 게으름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노조의 현주소는 이로우나 허하지 말라?

 

이 장에서 바로 최근 발생한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그 이후의 전개가 떠올랐다.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사들이 이제는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판단,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때 전교조와 같이 하면 정치색을 띠게 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논쟁에 불이 붙어 교사노조와 교총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전교조는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으로 민주노총은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으로 만들어졌고, 교사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며 사측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교총은 교사 관리자 연합체로 교장 중심의 교원단체를 의미한다.

 

즉 "나의 노조는 필요하지만 너의 노조는 불편하다."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었다.

 

현재 여러 가지 입장문을 내고 있는 것은 교사노조 측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명료한 것은 이러한 제 살 파먹기식 논쟁의 결과는 결국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3. 희망은 전문가의 정책이 아니라 울타리를 부수는 이들에게

 

저자는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내놓는 정책과 제도들에 대해 무작정 따를 것이 아니라 잘못된 예측이나 그들의 간단한 실수 하나로 일어나는 대형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노동자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라 설파한다. 

 

"지난 100년 동안 일자리 부족 문제가 어찌 기술변화만의 문제였던가. 수백만 명의 일자리를 하룻밤 새 없애버린 경제위기는 기술변화 때문이 아니다. 지난번 세계적 일자리 위기의 근원은 금융이고 불평등이었다는데 이를 고쳤다는 소식은 없다. 결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이고 우리가 선택한 정책과 제도의 문제였다."

 

"역설적이게도 제 나라에서 울타리 치기를 하는 기업이나 사람은 울타리 없는 세계를 원한다. 세계화나 세계주의는 이들의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소득과 일자리 불평등이 악화되고 경제마저 불안정해지며 시민적 불만이 치솟을 때도 세계주의 엘리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복된 날이 올 것이라는 복음만 반복했다. 그 결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그를 닮겠다는 정치인들이 여기저기서 나라의 수장이 되었다."

 

즉 저자는 노동자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 같이 나와 족벌화된 능력주의나 능력의 세습화와 독점화 등 그런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나오기를 꿈꾸며 그것을 희망이라 여기는 것 같다. 

 

저자의 책에 나오는 수많은 불편한 진실들. 대한민국의 노동자들과 경제활동인구들은 대부분 알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일터의 죽음도, 노동권의 부재도, 불평등의 가속화도.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며, 그동안 계속 싸워왔던 사람들은 변화의 더딤에 지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은 답답하지만 '잘못된 척도가 목표가 되면 그 척도는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에 '기근이 없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려면 저자처럼 계속 끊임없이 묻고 또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터 드러커가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길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듯, 우리 역시 더디고 힘들어도 함께 길과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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