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화엄사(華嚴寺), 실상사(實相寺), 사성암(四聖庵) 순례(巡禮). 복덕(福德)이 좀 쌓였을라나.

미야비 맘 2022. 9. 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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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을 읽고 풀이할 줄 아는 하찮은 재주가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화엄사로 향했다. 도중에 들른 구례 쌍산재(雙山齎).
11시부터 열린다고 해서 갈 길이 바쁜 우리들은 입구만 보고 그 앞에 있는 샘에서 감로만 한잔 얻어 마시고 다시 화엄사로 향했다. 친구 왈. 윤스테이에 이 쌍산재가 나왔다고 꼭 찾아서 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최근 재밌게 본 드라마 '환혼'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마침 공사중이라 전경도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오래된 나무와 그 결을 살려 깎은 조각이 좋아서 한 장 남겼다.



그리고 도착한 화엄사. 맑은 하늘 아래 각황전(覺皇殿)과 그 앞의 석등이 좋아서 스님 뵈러 가기 전에 얼른 찍었다. 조금 더 뒤쪽에서 찍었어야 했는데...

각황전은 통일신라 시대에 지어졌지만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서 조선 인조 때 주춧돌을 기반으로 다시 재건시켰다고 한다. 그 앞의 석등은 통일신라 시대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전통기법으로 잘 칠해진 단청이 있는 건물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단청이 다 벗겨져 그 아래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무단청 건물들도 참 좋아한다. 이 각황전과 나중에 방문한 실상사 보광전(普光殿)도 이 형태로 남아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날렵한 처마 아래로 치장하지 않은 고운 나무결들이 오히려 개운해 보였다.


사성암 주지이시자 화엄사 부주지이신 스님과 이야기를 끝내고 근처 실상사로 이동했다.

실상사 전경을 360도 스트리트뷰로 찍은 사진입니다. 감상해 보십시오.
https://goo.gl/maps/CL7AfWh7EzBAYBA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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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는 통일 신라시대에 조성된 사찰로 국내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위쪽에 언급한 실상사 보광전. 저 날렵한 처마 아래에 드리워진 풍경들은 단아한 미인이 걸친 최소한의 장신구 같다.


그리고 보광전 앞에 있는 석등. 석등에 불을 켜기 위해 오르내리는 사다리 같은 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어 흥미롭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석등이 단순 장식물이 아닌,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그리고 실상사를 대표하는 아미타 철불. 233m에 달하는 크기도 그렇지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불들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로 고려시대의 힙하고 시크한 철불들의 모습이 담겨져 가는 과도기적 작품임이 느껴졌다.

문화재청 자료


평지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좋고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잘만하면 유명 관광지가 될 법도 한데 관리 면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성암으로 향했다. 사성암 주지스님께서 해 질 녘 사성암에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하셨기에 일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도착할 즈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먹구름 사이로 노을은 발갛게 그대로 보여서 탄성을 자아냈다. 사성암 유리광전(琉璃光殿)에서 찍은 전경과 노을.


왼쪽은 먹색 구름들로 가득해 산들의 모습과 함께 한폭의 수묵화 같았다.


오른쪽은 이렇게 해의 모양까지 또렷한 노을이 지고 있다. 최근 핸드폰들의 사진 기능이 너무 좋은 것 같다. 갤럭시 노트로도 이렇게 찍히는 것을 보니 새삼 아이폰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사성암은 이름 그대로 네 명의 성자, 화엄사를 544년 창건하며 한반도 화엄종의 시조가 된 연기조사, <화엄경>의 중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대중화시킨 원효대사, 신라 말 한국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시대 화엄종 중심으로 불교 개혁을 주창했던 진각국사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드라마 '추노'와 영화 '더킹'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네 성인이 머무르며 수행했다고 하는 도선굴.


유리광전 안으로 들어와 마애여래 입상을 배알했다.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고 도선국사가 조각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박준규 작가의 작품

사실 개인적으로 화려한 불상들보다 누구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의 불상들을 더 좋아하다 보니 이 마애여래입상이 참 좋았다. 앞의 실상사에서 배알한 아미타 철불은 "그래, 너 왔느냐."라고 시크하게 말씀하실 것 같은 느낌이라면 사성암의 마애여래입상은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라고 하실 것 같은 느낌이랄까.
주지스님께서는 바쁘셔서 화엄사에서 못 올라오시고 총무 스님께 차를 한잔 얻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여덟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내려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 눈앞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거대한 화엄신장(華嚴神將)이 유리광전의 마애여래 입상을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런 진귀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다음에 언제 다시 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단풍이 지기 시작하면 템플스테이를 신청해 심신 수행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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