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라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내가 좋아하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과 포스터에 쓰인 문구 때문에 보고 싶었던 영화였으나, 당시 송혜교 씨의 연기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접었던 영화였다. 이후 잊고 지냈었는데 우연히 영화를 발견하고 보게 되었다.
용서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일날 약혼자를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잃은 다큐멘터리 피디 다혜, 그러나 그녀는 자신 눈앞에서 약혼자를 죽인 고등학생을 위해 탄원서까지 써 가며 그를 용서했고, 1년 후 용서라는 주제로 자신과 같이 '용서를 해 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본보기로 내세워 용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종용한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도중 자신이 용서한 학생이 또다른 사람을 죽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신에게 분노하는 다혜...
이전에 영화 '밀양'에서도 용서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신의 사랑 안에서 아들을 살해한 살해범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니는 신애. 그러나 정작 살인범의 딸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방관한다. 그리고는 살해범을 용서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들꽃까지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어 면회를 간다. 그러나 정작 살해범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자신이 이미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한다. 기절을 하고 마는 신애. 그녀는 분노한다.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용서를 해? 사람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신이 먼저 용서를 했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조심스럽게 잘못된 종교의식이 가질 폐단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면죄부... 단지 신을 위한 충성을 보이기만 하면 속죄가 실체화가 되는 기독교도들에게, 속죄는 손쉬운 행동이 되어버렸다. 또한 피해 당사자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수반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과정이 생략되어 버렸다.'
영화 '밀양'이 사람의 용서와 신의 용서, 개신교의 면죄부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면, 영화 '오늘'은 가톨릭에서 신의 이름을 빌어 '마음 약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있는, 강요된 용서만이 있고 반성은 없는 사회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의 다혜는 다큐를 찍으며 자신과 같이 용서를 한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용서가 옳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그 사실은 친구의 여동생인 지민에게 간파당한다.
지민은 좋은 집안의 남부러울 것 없는 막내딸로 보이나 실은 친아버지로부터 부당한 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그 폭행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런 지민이기에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파 다혜를 찾아갔지만 다혜의 용서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스스로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용서하는 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용서할 수 있는 자와 용서할 수 없는 자? 사람의 용서란...
다혜는 언듯 보기에 용서할 수 있는 자로, 지민은 그 반대로 대립되는 듯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다. 다혜의 인터뷰를 계속 거절하고 있던 피해자의 어머니에게서, 지민이 가족들을 용서하려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의 용서의 의미가 드러난다.
"용서란 미움을 없애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해요. 미움을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는 거예요. 서두르지 말아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그 시간은 자신만이 알아요. "
우리들은 지금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사람의 용서'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가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용서는 없다'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사실을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통해서 어렴풋이, 그리고 이정향 감독의 '오늘'을 통해 비로소 확인한 듯 하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주신 두 감독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https://tv.kakao.com/v/36179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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