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목을 봤을 때 의아했다. 나무에 대해 뭔가 수업을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나무들에게서 뭔가 배우겠다는 건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 독일어로 된 원제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Das geheime Leben der Bäume' 직역을 하자면 '나무들의 비밀스러운 삶' 정도가 될 것 같다. 오히려 이 직역 쪽이 책의 내용과 잘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꽤 오래전에 읽었지만 게으름으로 인하여 이제야 간략하게 감상문을 남긴다.
저자는 오랜 세월 임업 공무원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전문가의 글답게 연구자들이 밝혀낸 과학 지식이 가득하지만 나무들의 사회와 인간 사회를 비교해 결코 지루하지 않게 글을 엮어내고 있다. 나무들은 지하의 뿌리를 통해 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물과 빛의 균형과 조절을 해가며 영양분을 챙긴다. 또한 곤충의 습격이나 자연재해 등도 서로 간에 알리는데 저자에 의하면 일종의 언어라고 표현되는 독특한 향을 이용하거나 뿌리의 균류와 공생하여 균류에게 당분과 기타 탄수화물을 주면서 마치 인터넷을 사용하듯 그들을 이용한다고 한다.
나무들끼리의 언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돕는 복지도 있고, 혹독한 자연에서 자손이 살아남게 하기 위해 엄격한 교육을 시키고,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이는 나무의 계절 변화가 사실은 그들의 시간 감각에 의거해 나타나는 변화이며, 그러한 시간 감각은 기억력과도 연관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나무가 잎을 떨어내는 시기를 보며 나무의 성격까지도 가늠하고 있다.
인간들의 눈에는 그저 평화롭고 조용해 보이는 숲이라는 사회 그 이면에서 나무들은 인간들의 사회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나무들의 생태계에 대해 설명하며 인간들이 숲에 저지르고 있는 무지함에 대해서도 설파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조차도 나무를 너무 붙여서 심어 놓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상식처럼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현대 임업학 때문에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는 점이다. 즉, 임업학의 목적은 나무줄기를 최대한 빨리 키워 목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므로 붙여서 키우면 제대로 된 목재를 만들어낼 수 없어서 이런 잘못된 상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무가 더 많은 당분을 생산할 수 있도록 밤에도 계속 빛을 비춰 주면 휴식하지 못해 지치게 되고 겨울잠을 못 자면 말라죽는다고 한다. 이미 1980년대에 증명되었지만 도시에서 말라죽는 나무들의 4% 이상이 야간조명 때문이다.
또 다른 무지 중 하나가 숲의 외관이다. 사람들은 숲을 일정하게 정리해 주지 않으면 잡목으로 뒤덮여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0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보호 구역의 모습은 정반대로 오히려 나무들이 만든 울창한 그늘 때문에 잡목과 풀은 설 자리를 잃고 숲의 땅은 오래된 낙엽으로 비옥해져 나무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인간들에게는 휴식처를 제공한다.
그와 달리 쉬지 않고 나무를 베어 내는 인공 숲에는 빛이 과도하게 많고 풀과 잡목이 그 빛을 먹고 신나게 자라기 때문에 잡목과 넝쿨이 발에 차여 걸어 다닐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식물들을 좋아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으로 나의 잘못된 지식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과학이 무서운 속도로 발달해 가고 있으니 어쩌면 어느 날 정말로 나무의 언어가 해독되어 새로운 세상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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