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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 미제라블(고난자들)

by 미야비 맘 2017.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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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4(목) 영화의 전당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보러가지 못하다가 마침 보시지 못한 분이 계셔서 같이 보러 가기로 했다. 장소는 그 유명한 부산 국제영화제의 '영화의 전당'.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이참에 고고~

 

주차장 찾기가 어렵다는 걸 감안하시고 가시길. 잘못해서 바로 보이는 신세계 백화점 주차장으로 들어가시면 아니아니 아니되오~

 

한글 이름은 두레라움이라나 뭐라나... 요건 이쁘게 찍힌 것 업어왔음. 모던하고 심플한 느낌의 극장.

 

 

레 미제라블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시작부터 묵직하게 울리는 음악과 더불어 죄수들이 배를 끄는 장면. CG가 아닌 실사였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리고 휴잭맨 이하 죄수들의 억눌린듯 터져나오는 노랫소리와 가사에 첫 장면부터 눈가가 시큰해졌다.

 

참고로 휴 잭맨의 노래실력에 경탄을, 러셀 크로우의 노래에... 안타까움을... ㅜㅜ 원래 러셀 크로우의 팬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휴 잭맨에게 돌아서 버린... 단, 노래때문이었다. 연기는... 연기도 쪼끔 안습이었을까... ㅜㅜ 내가 상상하던 자베르는 아니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고개를 들지마라, 아래를 보라! 고개를 들어 하늘(신)을 볼 자격은 물론이고 같은 인간들을 볼 자격도 너희들에겐 없다!

 

인상적인 첫 장면. 장발장과 죄수들은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 일을 하고 그 장면을 자베르 경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고개를 들지 말라 한다.

 

고작 빵 한 조각에 19년의 형을 살고 겨우 가석방이 되어 그렇게 그리던 바깥세상으로 나오지만 노란색 죄수 신분증은 그에게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구원

세상과 신에게 절망과 분노만이 남아버린 장발장. 그리하여 자신을 거두어 준 신부마저 배반했으나 신부는 신을 대신해 그를 구원하고싶다고 말한다.

 

항상 드는 의문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갈등에 대해 가해자가 피해자를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신에게 용서를 빌고 용서받았다 하면 그만일까? 어쨌든 여기서는 피해자인 신부를 거쳤기에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있었고 또 신의 사자를 통한 것이므로 구원받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장발장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자신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되어버린 판틴과 그의 딸 코제트를 구한 일. 그리고 자신으로 오인받아 징역을 살게 될 죄수를 위해 몸을 던진 일일 것이다.(영화에서는 잡혀가지 않고 자베르와 격투 중 강에 뛰어드는 것으로 나오나 실제 원작에서는 장발장은 잡혀 감옥에 수감 중 배에 매달린 다른 죄수를 구하다 강에 빠져 죽은 것으로 위장한다.)

 

평생 아래만 보며 살아라. 아래로 아래로...

고아였던 판틴은 학생들과 어울려 놀다 버림받는다. 그리고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돈이 부족해지자 자신이 머물던 여관에 코제트를 맡기고 장발장이 운영하던 유리구슬 공장에서 일한다. 그러나 결국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고 공장에서 쫓겨난다.(원작을 읽지 않은 분들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나 장발장은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순결할 것을 조건으로 걸고 있었다. ) 여관에서 양육비와 병원비를 독촉받자 머리카락과 이까지 뽑아 팔고 몸까지 팔게 된다.(더군다나 원작에서는 판틴을 임신시킨 작자가 파렴치한 변호사가 되는 것으로 나온다. )

 

가난의 대물림... 가난한 자는 더 아래로 아래로... 현 대한민국이 딱 그렇다...

 

개천에서 더이상 용이 나지 않는다. 강남권과 학군지역으로 분류되는 지역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최대 7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서울대 입시 결과는 사교육에 대한 투자와 정비례한다고 입을 모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117003003

 

이 비극적인 캐릭터를 앤 해서웨이는 온몸으로 표현해 냈다. 그렇게 인형같이 예쁘던 초반의 모습과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을 때 모습에서의 차이. 게다가 코제트 역을 맡았던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비교했을 때 그녀는 결코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휴잭맨과 마찬가지로 온몸에서 뿜어 나왔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가 나올때마다 주책스럽게 내 눈에선 왠 눈물이 그리 쏟아지던지...

이 영화에서 또하나의 충격이라면 아역들이다. 장발장을 구원하는 코제트의 아역이 처음 등장해 뿜어내는 아우라와 노래실력은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이자벨 알렌. 하지만 더한 충격은 가브로쉬역의 다니엘 허들스톤이다. 이런 발칙한 꼬마같으니라고! 요 못생긴 꼬마가 내 눈에서 그렇게 눈물을 뽑아내다니!

가브로쉬역은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꼬마 시민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그러나 시민군들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럼 대한민국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 있다. 레미제라블 속의 이 봉기는 1832년 6월에 있었다. 대한민국은? 1830년이 아니라 1980년 5월 18일에 있었다. 100년하고도 50년이나 더 지난 20세기에 버젓이. 가브로쉬와는 달리 시민군에 가담조차 하지 않았던 11살짜리 초등학생이 생일선물로 받은 벗겨진 운동화를 줏으려다 총에 맞아 죽었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 학생들에 이어 임산부까지도.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813928

 

광주 민주화 운동을 5.18 폭동입네 비웃으시는 분들 보세요특히 혹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동이라도 받으신 분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의 나라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하면 혁명이고 대한민국에서 하면 폭동인가요?

 

혁명

사실 영화 속 1832년 6월은 혁명이라면 혁명이지만 시민들의 대대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기에 봉기라 불리운다. 그러나 이 봉기로 인해 1848년 2월 혁명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으며 또한 프랑스 혁명 자체가 1789년 7월에 있었던 바스티유 감옥 습격부터 1848년 2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기간을 아울러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혁명이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니 난 스아실... 마리우스 역에 불만이... 앙졸라스 역을 맡은 분(아론 트베이트) 왤케 멋진겨... ㅜㅜ

더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 하시는 분들... 반성하시기 바란다...(사진은 화려한 휴가 속 한 장면)

봉기는 실패하고 남은 파리 시민들이 그들이 흘린 붉은 피를 닦으며 노래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 딸들이었을텐데... 그들은 왜 죽어가야만 했나 하며... 그 장면은 의미심장했다. 비록 겁에 질려 순간 그들을 외면했다. 그러나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나 하고 품은 작은 의문은 이후 1848년 2월에 있을 큰 혁명을 예고한 것이다.

 

미완의 혁명이 가지는 의미이다. 우리들도 그렇지 않나? 어차피 바뀔 것은 없다. 누가 해도 마찬가지다. 과연 그러한가? 행동하는 누군가에 대해 왜?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 그것이 미완의 혁명이 가지는 의미가 아닐까...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난 왜 이런식으로 달달한 건 싫은지 모르겠다... -_-;; 원작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이 너무나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장발장을 위기에 몰아넣고 에포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동지들과 함께 하지 못한 그들의 사랑... 돌 던지고 싶은 것은 나 뿐? ^^;;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 레미제라블에서 새로이 발견한 그녀.

 

그녀는 레미제라블 뮤지컬에서 원래 에포닌 역을 맡았던 배우라고 한다.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만큼 예쁘거나 미성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에포닌 역에 딱이었다고 할까. 물론 배역의 차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아만다 보다 그녀가 훨 매력적으로 보였다. 허리가... 허리가... 비비안 리?

 

용서와 화해...

자베르는 자신을 구해준 장발장에게 당황하고 죽어간 수많은 시민군들과 병사들 사이에서 아연한다.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모든 선와 악의 경계선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혼돈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실 선과 악으로 양분되는 개념은 기독교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Good and Evil이다. God(신)에게 거스르면 결국 Evil(악)인 것이다. 반대로 무조건 신을 따르면 그 수단과 방법이 어찌되든 선이 되는 것이다. 이 개념이 잘못되어 면죄부라는 희안한 부가 생겼고 면죄부를 살 수 있는 돈만 있으면 어떤 죄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 인식은 지금까지도 기독교를 통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사람을 거치지 않고 신에게만 용서를 빌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자베르는 신의 이름으로를 부르짖다 실패했다. 장발장은 사람을 통해 용서를 구했고 사람이기에 용서했다.

 

끝으로...

사실 레 미제라블 원작은 프랑스 혁명에 촛점을 두기 보다 장발장이라는 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되고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6월 봉기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다보니 후반부에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이 시기에 영화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에 위안받은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

 

진 모씨라는 평론가가 썼듯이 바리케이드 저 너머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고 시민들이다.  

영화 속에서 에포닌이 노래했듯 이 비가 그치면 꽃이 활짝 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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