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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피란수도 부산, 그 두번째 기념물. 국립중앙관상대

by 미야비 맘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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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관상대

피란 시절에 무슨 기상청이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전쟁기인 1952년 4월 25일 자 경향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본 중앙관상대의 일기예보 발표는 재작년 6·25사변 발발 당시 부득이 수개월간 중단되었을 뿐이오. 작년 정월 부산으로 피란 온 이래에도 본대 직원의 일부는 부산측후소로 출근하여 피란민으로서 생활고를 참아가면서 매일 매시 24회 관측을 게을리하지 않고… 군 작전 기상을 취급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해운업자 및 어업자에게 수시 폭풍경보를 발표했다...'

'기상대'라는 제목의 글이며 필자는 국립중앙관상대장 이원철 씨로 명기돼 있습니다. 

즉은 오히려 전쟁 중이었기에 군사 작전 등을 위해, 또한 물자가 활발히 운송되고 있는 항구였기에 기상 관측은 중요했으며 힘든 피란 생활 가운데서도 관측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피란수도의 중요한 문화재임이 분명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국립중앙관상대에 대한 조사를 하다 보니 명칭의 오류가 발견되어 크로스체크를 하느라 휴일 반나절 이상을 다 보냈네요. 

첫 의문은 부산 광역시 홈페이지에 있는 '피란수도 부산유산 소개' 페이지에 있는 '부산 측우소'라는 단어였습니다. 음? 기상 관측에 웬 측우소? 비의 양만 관측한다는 건가?

https://www.busan.go.kr/depart/culture030102/view?curPage=1&bbsNo=7&dataNo=5231 

본문에 측우소와 측후소가 같이 있었기에 첫 시작은 측우소인가? 생각하며 그대로 자료를 인용하려다 아무리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아 다시 자료 서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산광역시 역사 페이지의 지정문화재 설명에도 역시 측우소가 나왔습니다.

http://www.busandabom.net/basset/view.nm?menuCd=90&lang=ko&url=basset&historyCd2=13&skey=135 

이걸 보니 더 이상해졌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피란수도 부산 소개 페이지와 서로 내용이 맞지 않습니다. 이 자료는 아예 '측우소'로 통일시키고 있습니다.

이쯤 되니 너무 이상해 원문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나온 것이 표지석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측후소라고 박혀있습니다.

그리고 고(古) 신문 기사 원문 찾기 페이지에서 '부산 측우소'와 '부산 측후소' 양쪽을 크로스 체크했습니다. 그랬더니 양쪽 모두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부산 측우소' 쪽 자료가 얼마 되지 않아 일일이 살펴보니 원문이 모두 '부산 측후소'였습니다.

'측우소'는 아니라고 99% 확신은 들었지만 신문 자료는 모두 1920년 이후의 자료들이었기에 1904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의 명칭이 '측후소'가 맞는지, 혹시 진짜 '측우소'인 것은 아닌지 하는 1%의 의심을 거두지 못해 일본 측 자료까지 뒤지다 마침내 발견했습니다.

부산요람

부산요람(釜山要覧)이라는 자료인데 大正元年(1912)에 만들어진 자료입니다. 당시의 부산에 대해서만 654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여기에 부산측후소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明治17년(1884) 동해(일본해)측 폭풍우를 대비하기 위해 기상관측이 필요하게 되어 부산전신국(釜山電信局)에 위탁해 같은 해 6월에 관측을 개시. 그 후 영사관으로 관측을 이관했지만 관측기기가 불완전했다. 

明治37년(1904) 1월, 러일전쟁의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기상정보가 필요하게 되어 중앙기상대 제1 임시 관측소가 기획되었다. 같은 해 3월 부산 보수동에 처음 설치되어 기상관측, 기상에 관한 사무가 시작되었다. 

明治40년(1907) 4월 통감부(統監府) 소관이 되었고 明治41년(1908)4월에는 한국농상공부(韓国農商工部) 소관, 明治43년(1910) 한일합방이 된 이후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관측소의 부속이 된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바로 부산광역시청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오류 정정 제보를 넣었습니다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하나 더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도 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s_kdcd=&s_ctcd=21&ccbaKdcd=31&ccbaAsno=00880000&ccbaCtcd=21&ccbaCpno=3412100880000&ccbaLcto=11&culPageNo=1&header=region&pageNo=1_1_3_0&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ssetnamel= 

저기 1905년 4월 28일에 신축되었다는 내용이 어떤 자료를 근거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07년 4월에 통감부 소관이 되었다는 내용은 있었습니다만 신축에 대한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검색으로는 한계가 있는 내용일까요...

기상청의 어느 기자분 블로그에는 1906년까지 거론되어 있었습니다. 부산 측후소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나왔던 부산요람이나 다른 일본 자료에는 없는 내용이었던 터라. 이것도 한번 질문을 넣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05년 4월 28일 신축되었다는 구 부산 임시측후소(보수동)

어쨌든 '부산 측후소'는 그 이후 1934년 대청동 복병산에 새 측후소가 완성되어 이전합니다. 새 측후소는 해방 이후에는 1948년 8월에 국립중앙기상대 부산측후소로 개칭, 1981년 부산지방기상대로 개칭, 1992년 3월에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01년 10월 25일에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됩니다.

대청동 복병산으로 이전되어 세워진 신축 측후소

항구도시인 부산에 세워진 기상관측소이기 때문에 특별히 배 모양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꼭대기 층인 옥탑층과 지붕의 모습은 선장실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근대에 도입된 표현주의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데다 르네상스적인 기풍이 보이는 건물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재라고 합니다.

2002년에 부산지방기상청 청사는 동래구 명륜동으로 이전되는데, 대청동 측후소가 고도 70m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도심과 거의 3~5도 이상 온도 차이가 나서 관측소로 적합한 곳은 아니나, 1904년 이래 관측되어 온 기상 데이터의 연속성도 있어 기상 관측 업무만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2017년 5월에는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주관하는 ‘100년 관측소’에 선정되었습니다.

https://youtu.be/hAXW0qhT_qs

 

다음 글은 세번째로 지정문화재가 된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관저)'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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